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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찾아가는 길이 적힌 주소를 들고 나서는 길
요즈음은 스마트폰 주소 찾기로 어디든 갈 수 있으나 저는 종종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메모를 한 쪽지를 들고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 날도 가는 길이 촘촘히 적힌 메모지를 들고 어르신 댁을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우리가 찾아가는 길은 보통 1시간 30분가량 걸리는 곳들이지요. 제가 만난 분은 많이 아프신 분이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한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 시간들을 몹시 즐거워하셨고 이 시간들을 잘 보내고 싶은 마음에 진통제까지 드시며 그림 그리는 시간을 기다리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어르신께서는 몇 년 남지 않은 삶의 시간들을 잘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제가 여쭈어 보았습니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요.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에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서 남겨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어르신의 집 안과 베란다에는 예쁜 화분들이 가득했었고 그 화분들을 벗 삼아 외로움을 달래며 지내고 계셨습니다. 어르신의 사랑을 듬뿍 받던 화분들은 정말 아름답고 빛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시간을 마련하였고, 그렇게 어르신의 그림편지는 하나 둘 쌓여 갔었지요.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 둘 그려보고 싶다고 하시어 집안에 있는 물건을 그리고 글을 쓰기 사작했습니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들은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주기도 했었고 삶을 정리하는 힐링의 시간이 될 수 있었다는 것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 이었습니다.
화분 꽃을 그리며 추억의 웃음꽃이 피었어요
오늘은 화분에 핀 꽃을 그리며 글을 쓰는 시간을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물감을 이용해서 찍고 누르는 등 물감 놀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중간중간 몸이 너무 아파하시어 쉬시길 권하였으나 진통제를 먹으며 견디시는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사인펜과 물감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참으로 기뻐하셔서 저 또한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그림을 그린 후 어르신은 추억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시곤 하였는데 저는 빠른 속도로 받아 적어 드렸습니다. 그렇게 적은 글들 중 어르신이 오케이 한 것들을 추려서 다시 옮겨 적어드렸지요.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어르신의 그림 꽃 일기는 한 장 한장 쌓여 갔고 이것을 모드 잘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늘 말씀하셨지요. 멀리 있는 자식에게 전해주고 싶다고요.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서 추억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림움들이 묻어 나왔으며 살아오면서 체험하고 느꼈던 것들이 표현되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마음이 후련하다고도 하셨는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키는 힘이 된다니 이것이 바로 힐링의 예술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물론 우리의 주변에는 우리의 삶에 변화를 주고 행복을 줄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엇에서 그런 것을 찾을 수 있는가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물감놀이는 힐링의 시간이 되고
수채화물감으로 원하는 색을 선택하여 쿡쿡 듬뿍 종이에 짜낸 후 찍고 누르고 펼쳐보면 다양하고 화려한 무늬들이 이야기를 쏟아냅니다. 이 물감놀이를 통해 오늘은 무슨 이야기보따리가 풀릴까요. 물감을 다루는 시간에는 더 많은 추억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자식들 이야기, 가족 이야기가 가장 많은 듯합니다. 어르신의 아픔보다는 여전히 가족을 생각하고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뿐인데 그 자식은 어디 있는 걸까요. 위의 그림에서 빨간색과 노란색, 파란색으로 물감 찍기 한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컸습니다. 가족들이 보여 살았던 젊은 날의 추억을 많이 생각하였고 그리워하셨지요. 노란색은 신기한 무엇이라고 하시며 세상사는 것 그 자체가 신기한 일이라고 하시며 웃으셨습니다. 입술이 부르트셔서 웃는 것조차 힘드셨지만 웃으셨습니다. 어린 시절들과 수녀원에서 살다가 나온 이야기들 장사했던 일들 그 모든 것들이 아픔이었지만 지금은 다시 못 올 추억으로 남았다며 그림을 쓰다듬으셨던 모습을 저도 지금 추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그림들을 스크랩하여 정성껏 모아 두셨던 그림으로 남긴 마음의 편지들은 잘 도착했을까요. 저와의 인연은 7번으로 마쳐야 했으므로 그 이후의 일을 알 수가 없으나 그때의 화분 꽃 추억을 그린 그림 편지는 원하셨던 분에게 잘 도착하여 서로에게 위로를 주고 또 하나의 추억으로 남아 힐링의 시간이 되어 주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