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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서 읽어지는 삶의 이야기
저는 우연한 기회에 연로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인물 드로잉을 그리는 일을 했었습니다. 그 당시 혼자 사시는 독거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함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었어요. 간 혹 50대의 젊으신 분들을 대상으로도 인물화 그리는 작업을 진행했지요. 대체로 남들에게 말 못 할 파란만장한 사연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분들의 얼굴을 그리는 과정에서도 인생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위의 얼굴 드로잉은 제가 혼자 그린 것은 아니며 그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가르쳐 드리면서 그린 것입니다.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들을 늘 들고 다녔어요. 중형 화판, 캔드지류, 4B연필과 지우개 등 인물화 그리기 위한 필수 도구들은 들고 다녔고, 함께 그릴 분의 것까지 준비해서 들고 다녔습니다. 인물화를 그리기 위해 방문한 어르신의 사진들 중 원하는 것을 고른 후 그림 그리는 작업을 진행합니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은 반갑게 맞아 주셨지요. 그리고 함께 그림을 그리는 과정들을 몹시 즐거워했던 모습들이 저의 추억 속에 깊게 남아 았습니다. 대부분 주어진 1시간 내에 인물 그리기를 완성하고 액자에 넣어 드리는 것까지 진행했습니다.
그러므로 사진을 보고 전체적인 구도라든지, 눈, 코, 입의 형태들을 빠른 속도로 밑그림을 그려 드립니다. 그 후 세밀하게 그리는 작업을 같이 진행하면서 완성해 나갔어요. 우리가 인물화를 그리는 것은 멋진 완성도 높은 작품을 완성하는 것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고 함께 그림을 그리며 인생의 이야기를 나누며 그분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고 공감해 드리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하는 미술활동 시간이었어요.
젊은 여인을 만나 초상화를 그렸던 시간들
어느날 위의 젊은 여인을 만나서 강아지를 안고 있는 모습을 그렸던 시간을 기억합니다. 이분 집에 도착 후 현관문 앞에서 벨을 누르자 '문을 열어 놓았으니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들어갔으나 반려견을 안고 앉아 있었어요. 사실 알고 보니 젊은 이분은 양쪽 다리를 쓸 수 없는 분이셨지요. 그러나 예쁘게 화장을 하고 이 초상화 그림을 그리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고로 예쁘게 꾸미고 화장을 하고는 예쁘게 잘 그리고 싶다고 하셨던 날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그림활동을 하는 시간에는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도 수많은 사연을 간직한 이야기보따리가 풀리는 시간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분들의 얼굴에 새겨진 삶의 이야기들을 연필 한 자루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만남의 소중함 속에서 위로와 격려와 공감의 시간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했던 시간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분들을 만나러 가는 길도 인생의 여정길처럼 평탄치 않았고 그분들과 만나 그림을 그리는 시간들도, 그분들의 모습을 통해 투사되어 나타나는 말들도 인생사 일장춘몽과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몇년의 세월이 흘러 제가 초상화를 그려 드렸던 분들은 대부분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그날의 추억과 함께 나눴던 인생의 이야기들을 아직도 저의 마음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남는 또 하나의 교훈은 인생은 돌도 도는 만다라라는 것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우리 삶은 인생의 수레바퀴라고나 할까요. 그렇게 돌고 도는 삶의 이야기를 만다라와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