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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 꼬불 그 언덕을 넘고 넘어 찾아간 곳
이날도 저는 어르신을 만나러 갔습니다. 가는 길을 빽빽하게 써 놓은 메모지를 손에 들고 길을 나섰습니다. 긴 시간 버스를 타고 도 갈아타고 정류소에 내리면 이제부터는 길 찾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길 주소가 표시되어 있는 이정표를 보고 찾아가는 것도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찾기 어려운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집들이 많이 있었어요. 길고 긴 언덕을 올라가서 이젠 이곳일까? 하고 골목을 들어서면 아니었고 또 이곳일까? 하고 들어가면 또 아니고... 이렇게 집을 찾는 숨바꼭질 시간이 끝나고 나면 저는 기진맥진되어 있었습니다. 힘을 내서 어르신께 반갑게 인사를 하고 들어가면서 저의 초상화 그리기 미술활동은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술활동을 7년 정도 하였는데 초반기 3년은 초상화 그리기를 진행했었습니다. 그 당시 시 제가 만나러 가는 어르신들은 주로 난지역에 살고 계시는 독거어르신들이었어요. 그 누구의 돌봄이 없는 몸도 아프고 아픔도 외로운 분들이셨지요. 그러기에 그분들을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길들은 참으로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틀림없이 기관으로부터 주어진 주소를 찾아갔지만 그런 분이 없다고 해서 당황한 일도 있는데 알고 보니 그 집주소는 맞았었고 그 어르신은 그 집의 저쪽 뒤칸의 또 한 채의 집에 살고 있었는데 그 집은 주소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어르신 집을 찾는 것은 인생길을 헤쳐 나가는 여정인 듯 참으로 고달픈 시간들이었지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통화했던 저 왔어요!
누구라고? 저예요 몇번이나 통화했던 저요~ 큰 목소리로 인사를 드리면 그때서야 저를 알아보시고는 들어오라 하십니다. 어르신을 만나면 이런저런 인생사 이야기를 나누지요.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며 이날의 초상화 그리기는 시작됩니다. 이날의 초상화 그리기는 초 스피드로 그려야 했어요. 제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이므로 그 안에 완성하는 것도 저의 능력이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가 다 그려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이 하실 수 있도록 쉽게 가르쳐 드리는 것이었고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이 활동은 단순히 그림을 그려드리는 미술활동이 아니라 이 시간을 통해서 어르신이 잠시나마 예술을 체험해 보시도록 하는 것과 이 시간을 통해 웃으며 힐링할 수 있는 치유의 시간이 되도록 도와드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습니다. 그림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시므로 재미있게 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것도 중요했지요. 초상화를 그려드리기 위해 방문했던 이 어르신께서는 적극적으로 그림을 그리셨고 '어떻게 하면 예쁘게 할 수 있어?'라고 물어보시며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가장 위의 사진은 그당시 어르신께서 저의 설명을 들으시고 머리카락을 그려보시는 모습입니다. 어르신이 그리고 나면 제가 마무리해드리고, 또 옷 부분도 어르신이 꼬불꼬불 그려 놓으시면 제가 다시 수정해 드리고 이런 과정들을 진행하면서 추억의 초상화는 완성되었습니다. 이 과정들이 참으로 소중했었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어르신의 얼굴은 인생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초상화를 그리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생사를 말씀하셨는데, 그런 이야기들은 어르신의 얼굴에서 모두 드러나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어르신의 자신감은 없으나 자상하신 말 투에서는 그분의 성격을 읽을 수 있었고 외로움이 많이 묻어나는 표정들은 저의 마음도 많이 힘들게 했었지요. 옛 어르신들의 삶은 대체적으로 아프고 힘들고 고달픈 생을 살아오신 분들임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세대와는 전혀 다른, 어쩌면 너무나도 동떨어진 시대를 살아오신 분들이기에 몸도 마음도 건강하신 분들은 없으시지요. 이런 분들을 위하여 잠시나마 웃음을 드리는 일, 옆에 있어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 이 나라의 기둥이 되셨다는 이야기를 해드리는 것은 그분들의 삶에 큰 위로가 되는 것 같았어요.
이분들을 찾아가는 길들은 언덕위에 있고 꼬불꼬불하여 힘들고 고달팠지만 그러한 길을 수년 동안 걸으며 저는 인생의 여정길을 찾아 나선 순례자의 삶을 깨닫게 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길들을 걸어 다녔던 저는 어떤 인생길을 찾아 나섰던 것인지, 그 길들을 통해서 만났던 수많은 어르신들의 얼굴에서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나이 먹어 갈 것인지, 그 길을 통해서 만났던 어르신들의 삶을 통해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돌고 돌아서 만나고 헤어지는 그것,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인생사가 담겨 있으니 이런 인생을 저는 만다라라고 표현해 보았습니다.